김현. 김화영. by ears

'글의 침묵'이라는 제목이 붙은 <섬>의 소개 글을 다시 읽는다. 꽤 긴 시간이 그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그 글에서 받았던 인상에 대한 기억만이 인덱스처럼 툭 튀어나와 한 번씩 눈에 밟혔다. 글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변한 것이겠지. 글을 다시 읽으며 새로운 인덱스를 떠올린다. 보수적이며 과거지향적인 색의 인덱스다. 동시에 기억 한쪽에 남아있던 어떤 경구를 다시 발견하기도 한다.

'There are so many stories....... more beautiful than answers.' -R. Adams

김화영은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는 이야기, 목소리가 높은 주장, 무겁고 난해한 증명, 재치 있는 경구, 엄숙한 교훈은 많으나 <아름다운 글>은 드물다.' 두 작가는 대답과 아름다움을 얘기한다. 과거 나는 아름다움에 조심스레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이젠 어떤가. 대답이라고 쓰인 꼬리표를 손에 쥐고 묻고 있다.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처럼.

김현은 일기에서 그르니에의 글을 '왜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까?'라고 자신에게 묻는다. '깊이도 고통도 없는 글들을......' 깊이와 고통은 중력이 표상하는 정확한 두 가지다. 김현은 은총이라는 상승의 이미지에서 죽음을 읽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죽음. 그에게 아름다움은 아마 펠리니가 <8과 1/2>에서 추기경의 입을 빌려 말한 행복의 이미지와 비슷할 것이다. '저는 불행합니다.'라는 어느 사제의 말에, 그는 이렇게 질문으로 답했던 것 같다. '왜 행복해야 하나요?' '누가 행복해지려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나요?'

Time Passes by ears

Time Passes


“Well, we must wait for the future to show,” said Mr. Bankes, coming in from the terrace.
“It’s almost too dark to see,” said Andrew, coming up from the beach.
“One can hardly tell which is the sea and which is the land,” said Prue.

polina by ears

1. 이 얘기가 성공이 정답처럼 비치는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실패가 정답도 아니다. 답이 없는 것은 더욱 아니다. 2. 어린 폴리나 손을 잡고 보진스키에게 소개하는 것까지가 부모가 할 일이다. 3. 제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완전히 망치지 않으면서 일들이 돌아간다. 완전히 망쳐버릴까 두려워 멈춰버리면 완전히 망쳐버리기도 한다. 4. 1, 2, 3은 어쨌든 상관없다. 이런 해석은 지겹고, 그 나지막한 톤이 역겹다. 이런 성장드라마에 반응하는 내 감정은 아직도라든가, 이제는 이라든가, 왜? 라든가, 어째서라든가, 역시다. 5. 모두에게 인정받는 이, 모두가 인정하는 이가 인정하는 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이에게 인정받는 이가 가진 욕망 그리고 그 두 이의 욕망의 차이. 순수함이라면 차라리 전자다. 순수함 1승.

Tristesse by ears


, 굴욕적인 실수를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하지만 때로 부족의 분위기가 급변했을 경우 여러 날 동안 모든 궁금증을 억제하고 근신상태에서 살 줄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딱한 일을 수행하려고 나는 몸과 마음을 썩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얼마 안 있으면 종족 전체가 뿌리째 사라져버리고 말 50-60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내도 좋다는 묵인을 얻어냈다는 겨우 그 결과 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정든 고향이며 친구들이며 습관을 버리고, 이렇게 많은 경비와 노력을 치르고 건강까지 위태롭게 만들어버린 셈이란 말인가!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이를 잡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밖에 없는데도 내 일의 성패는 이들의 변덕에 달려 있다.

  이럴 때는 으레 이런 자문을 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하러 여기 왔는가? 나는 인간 폐물들을 쫓아다니느라 지구의 외진 곳만 찾아다니고 있다.

  이상한 역설이지만 나의 모험생활은 어떤 새로운 세계를 내 앞에 전개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의 세계를 내 마음속에 소생시켰다. 내가 찾아 나섰던 세계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전혀 닿은 적이 없는 여러 지역을 탐색하면서,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대가라고 생각해야 할 궁핍 속에서 원주민과 함께 생활을 해봤을 때도 나는 거기서 내가 찾고 있던 민족이나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내가 본 것은 자청해서 떠나버린 프랑스의 아른한 시골풍경이나, 인생에 부여하고 있던 의미를 부정하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스스로 포기했던 한 문명의 가장 전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과 시의 단편이었다. [슬픈 열대,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편 부분,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역 일부 수정, 한길사]

이천십사 년 말 by ears


그래 편하고 안전하게 살아라. 밥해서 먹어, 라면 먹지 말고 아토피 생기고 짜게 먹게 돼. 설렘은 목숨을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단축시켜 나간다. 담배는 끊었으니 술은 좀 줄이도록 해. 건강검진은 꼭 받아. 아이한테 화내지 말고 아내는 충분히 말귀가 통하는 이잖니. 속에 담아 두면서 어떻게 살아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바로 얘기해서 풀고 살자는 말이 가지는 권력관계 따위를 생각하는 삶을 살지 말도록 해. 부지런히 일하고 생각 없이 쉬도록 하자. 이렇게 내 삶이 자식들 삶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그렇게 흘러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생각은 하나 마나 한 생각이야. 파격도 격의 범위 안에서, 어쩌다 찾아오는 환기를 감사히 여기며, 가끔 그 음악이 너무 좋으면 아주 옛날 레코드도 한 장쯤 소유하면서, 책에 밑줄을 긋거나 굳이 어딘가에 옮겨 적으며, 술에 취하지 않고 맛에 관해 얘기 나누며, 플라톤이 공자가 예수가 누가 잘났는지 안주 삼으며, 따뜻한 곳에 앉아 마주 보며, 아이에게 지폐 한 장을 쥐여주어 구세군 냄비로 향하게 하고, 받은 교육과 타고 난 눈치와 성품의 바름을 감사히 여긴다. 나이가 들면 나이 든 척하기가 편해지니 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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